물 좀 주소 물 좀 주소 목 마르요 물 좀 주소
물은 사랑이요 나의 목을 간질며 놀리면서 밖에 보내네
아! 가겠소 난 가겠소 저 언덕위로 넘어 가겠소
여행 도중에 처녀 만나본다면 난 살겠소 같이 살겠소
와 아아아 아 아하 하 아 아아아아 아 아 아아아
아 아아 아 아아아아 아아아 아 아 아하 하 아아아아아
물 좀 주소 물 좀 주소 목 마르요 물 좀 주소
그 비만 온다면 나는 다시 일어나리 아! 그러나 비는 안 오네
(풀피리 소리)
acoustic lead-임용환 · electric rhythm, kazoo-한대수 · bass-조경수 · drum-권용남
* [멀고 먼 길] [무한대] 합본음반 masterpiece (신세계 음반, 2000년 제작)에서 인용
(아... 소리는 본인이 받아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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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좀 주소’ ‘난 가겠소’와 같이 ‘~소’라는 어법은 언제 사용하는가? 존칭은 아니지만 상대를 낮춰 보는 것도 아니다. ‘주세요’ ‘주시오’ ‘주오’ ‘줘’ ‘주시겠소’ ‘주겠소’ ‘주시지요’ ‘줄래요’ 등과 구분되는 어법이 아닌가. ‘물 좀 주소’ 라는 말은 누구에게 하고 있는가? 하늘에 대고 하는 말이 아닐까. 하늘은 곧 신을 뜻하는 것. 신에게 하는 말이니 일반적으로 높여야 마땅하나 한대수는 높이지도 않고 낮추지도 않는다. ‘물 좀 주소’라는 어법은 주막에 들어서면서 주모에게 건네는 말이라고 하면 적당하지 않을까. 즉, 낯선 사람을 만났을 때 친근하게 말하면서 자기 할 얘기를 하는 어법이라고 하면 맞을까. 한대수라는 가수는 신이라는 존재와 마주섰지만 당황하지 않는다. 낯선 객지에서 홀로 길을 가는 나그네요, 낯선 사람이지만 주막의 주모는 낯설지 않은 것처럼 한대수에게 신은 그처럼 낯설지 않은 존재인 것. 공손하게 말하지 않는다. 목청껏 소리를 지른다. 그만큼 다급하기 때문.
‘목 마르요’라고 소리를 지르면서 ‘물 좀 주소’ 라고 외친다. 목마름을 해소시켜줄 ‘물’은 무엇인가? ‘물은 사랑이요’ 라고 답을 하고 있다. 목마름은 사랑에 대한 목마름이 된다. 사랑에 대한 목마름을 해결하기 위해서 하늘[신]에게 말하고 있다. 사랑을 줄 수 있는 존재는 신이라는 것. 사람이 진정한 사랑을 줄 수 없는가? 사람에게서 진정한 사랑을 찾지 못했으므로 신에게 기대를 걸어보는 것일까. 신에게만 기대지 않고 한대수는 사랑[= 물]을 찾아서 길을 떠난다: ‘아! 가겠소 난 가겠소.’ 어디로 가는가? ‘저 언덕위로 넘어가겠’다고 한다. 한대수 앞에 상당한 높이를 가진 ‘언덕’이 있었던 것. 목마른 상태에서 언덕을 넘어가는 것은 힘든 일이 아닐 수 없지만 가겠다고 결심을 굳힌다. 언덕위로 넘어가는 것은 새로운 세계를 찾아가는 ‘여행’이다. 여행은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계속해서 떠돌아다니는 것. 사랑을 찾아 떠났으니 사랑을 만나면 정착하게 될 것인데, ‘처녀 만나본다면’ 살겠다고 한다. ‘물’은 ‘사랑’이라고 했는데 ‘사랑’은 다시 ‘처녀’로 구체화된다. ‘처녀’는 ‘처녀지’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여행하다가 아무도 발 디디지 않은 처녀지를 만나면 그곳에 정착해서 살겠다고 하는 것이 아닐까. ‘처녀’란 ‘순수한 사랑’을 가리킴일 것. 순수한 사랑을 만나면 ‘난 살겠소’ 라고 하는데, 한대수의 의도와 상관없이 ‘나는 비로소 죽지 않고 살게 될 것이다’라고 읽고 싶다. 나도 살고 처녀도 같이 살게 되는 것. 순수한 사랑이 나를 살릴 뿐만 아니라 나와 순수한 사랑이 만남으로 해서 순수한 사랑도 살게 되는 것. 순수한 사랑도 이 세상에 발붙이지 못하고 있는데 한대수 자신이 순수한 사랑을 만남으로 해서 순수한 사랑도 비로소 살 수 있게 될 것이라는 뜻.
‘나의 목을 간질며 놀리면서 밖에 보내네’ 라는 노랫말은 무슨 뜻일까. ‘물’이 ‘나의 목을 간질며 놀리’고 있다. 물이 목으로 넘어가지 않는다. 누가 누구를 ‘밖에 보내’는가? 다음에 이어지는 가사가 ‘아! 가겠소 난 가겠소’인 것을 보면 물이 나를 ‘밖에 보’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물’ 곧 ‘사랑’이 나를 ‘저 언덕위로 넘어’ ‘여행’을 떠나게 한다는 것. ‘사랑’은 ‘나의 목을 간질고 놀리’는 물과 같은 것. 사랑의 갈증은 풀리지 않는 것.
‘그 비만 온다면 나는 다시 일어나리’ 라고 말하고 있는데 ‘비’가 아니고 ‘그 비’에 주목하자면, ‘그 비’는 어떤 특정한 비를 가리킴인 것. ‘그 비’란 <사랑의 갈증을 풀어줄 비>가 아닌가. 그 비만 온다면 ‘나는 다시 일어’날 것인데 ‘비는 안 오’는 것. 사랑의 갈증은 풀리지 않는다는 것이 한대수가 가진 생각의 바탕을 이루고 있다. 이것은 비단 한대수만의 생각은 아닐 터. 이 세상에서는 사랑의 완전한 만족이 있을 수 없는 것이 아닌가. 모순을 안고 있는 비극적 존재인 인간에 대한 성찰이 바탕에 깔려 있는데, 그 모순과 비극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그 비’가 와야 다시 일어날 수 있는데 비가 안 오는 현실. 뒤집어서 생각해 보면, ‘그 비’가 오게 되면 완전한 사랑의 만족을 얻게 되므로 다시 일어서지 않아도 되는 상태가 된다. ‘그 비’가 오지 않으니 사랑의 갈증을 풀기 위해서 일어서기 위한 모색을 계속하는 것. 이 노래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풀피리(kazoo) 소리는 목가적(牧歌的)인 한가한 소리가 아니다. 실제 연주를 보지 못했으나 아마도 얼굴이 시뻘겋게 되고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는 아니지만 힘이 상당히 들어갈 정도일 것이라고 충분히 상상되는 음색이다. 상투적인 노래와 보통의 악기가 아닌 새로운 악기의 개발과 시도는 <풀리지 않는 사랑의 갈증>을 나름대로 풀어보려는 의미 있는 시도가 아닌가. 그저 한 번 해보는 시도가 아니라 온 힘을 다해서 나아가는 것이므로 시지프스적인 비장미 혹은 절망적이지 않은 비극적인 아름다움 혹은 절대 모순 앞에서 주저앉지 않고 ‘다시 일어’나는 도저(到底)한 힘이 만져질 듯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